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자렛의 요셉 (문단 편집) == 교회 내의 인식 변화 == '''[[예수 그리스도|(양)아들]]과 [[성모 마리아|아내]]가 너무 유명한 나머지 묻힌 인물로''' [[마리 퀴리]]에게 묻힌 피에르 퀴리나, [[신사임당]]과 [[이율곡]]에게 묻힌 [[이원수(조선)|이원수]]와 같은 처지.[* 사실 성서에서 요셉의 비중 자체가 아내인 마리아보다 낮은편이다. 예수가 성인이 되어서 기적을 행하고 포교를 하고 다닐 때, 그리고 수난당한 뒤에도 마리아는 종종 등장하는데 요셉은 언급이 거의 없다. 기껏해야 누군가가 예수를 보고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는 걸 알아보는 정도.] 물론 [[가톨릭]]에서는 매해 3월을 '''성 요셉 성월(聖月)'''로 지정해 성인의 전구를 청하는 달로 정할 정도로 대우가 매우 좋은 성인임에는 틀림없다. 게다가 웬만한 천주교 성당을 가보면 중앙의 예수 [[십자고상]] 좌우에는 성모상과 함께, 성 요셉의 성상도 세워져 있는 것을 볼수 있다. 성 요셉의 인식 변화에 관해서는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근대 이전 [[중세]] [[유럽]]에선 아무리 절대자에 의한 것이라곤 하지만 아내를 뺏기냐며 각종 연극에서 우스꽝스럽게 표현되는 등 공적이 아닌 사적인 영역에서는 상당히 취급이 박한 인물이었다. 참고로 '중세는 종교로 꽉 막힌 시대'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그 때도 사람들이 살던 시기다. 이런 식으로 '성인'이나 주류 윤리 도덕을 조롱하고 놀리는 사례는 항상 존재했다. 허나 이것도 수평적인 관계에서만 웃고 넘기는 농담에 가까웠다. 엄연히 신성모독에 가까운 발언이라 높으신 분들 앞에서, 특히 종교인들 앞에서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였다. 17세기 [[청교도 혁명]]이나 16세기 [[위그노 전쟁]] 등 종교적인 이유로 유혈이 난무하는 등 살벌한 시기에는 이런 농담은 삼가졌다. 근대 이후 [[노동]]계층이 사회의 주류로 부상하고, 근면성실한 노동이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강조된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세계로 확산되면서 노동자와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자들의 수호성인으로서의 요셉 성인에 대한 존경이 많이 커졌고, 성인의 이미지도 크게 달라졌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5년 공산주의자들의 노동절에 대응,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선포했다. 지금은 과거의 조롱섞인 이미지는 사실상 찾아보기 힘든 수준. 성 요셉 호칭기도에서 성 요셉은 교회 전체의 주보로 공경받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들, 아버지들, [[성직자]]와 [[수도자]], 여행하는 사람들, 노동자, 가정, 동정녀, 환자, 임종하는 자의 주보로 공경받고 있다. 교황 문헌과 일반 신자들에 의하여 기도하는 이, 내적 생활, 가난한 이들의 주보로 불리고 있다. 성 요셉을 특별히 공경하는 달인 3월 성 요셉 성월은 1840년대부터 기념되기 시작했다. 의인이며 신앙인의 모범인 그의 덕을 본받고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요셉 성월 신심서는 1850년 처음 발행됐으며 5년 뒤 [[교황청]]의 정식 인가를 받았다. 2020년 12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1년 한해 동안을 [[https://m.youtube.com/watch?v=KJE0Ui7XoE4|'성 요셉의 해'로 선포했다.]] 지난 19세기 [[비오 9세]] 교황이 요셉을 '보편 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한 지 150주년을 기념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설명이다. 아울러 요셉 성인의 행적이 평범한 가정 속의 아버지, 노동자(일생을 평범한 목수로 살았던 점), 이주민과 난민(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한 점), 여성에 대한 존중과 보호(마리아의 혼전 임신을 알고도 받아들인 점) 등 현대 사회가 직면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귀감이 된다는 취지라는 설명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